[기고] 투표, 이런 사람에게(막6: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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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기독뉴스 기자 작성일2018-05-25 13:54본문
안양초원교회 안명복 목사
13일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일입니다. 여러분은 투표하실 때 어떤 기준에 의하여 하시는지요? 아마 지금쯤은 자기가 투표할 지도자를 결정하셨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입후보자가 속한 당을 기준으로 선택하기도 하고, 또는 그 입후보자와의 개인적인 관계(학연, 지연 등)에 의하여 결정하기도 하고, 그 입후보자의 신념이나 사상 등을 고려하여 선택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지하는 후보가 어느 것은 맘에 들지만 어느 것은 들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배격하는 사람들의 기준과는 달라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기준에 의하여 지도자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 우리를 대표할 만한 사람이 선출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좋은 지도자, 좋은 대표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즉, 성경이 말하는 지도자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지도자의 자격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솔선수범하는 사람(45)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시며 배를 타고 갈릴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홀로 남아 모인 무리들을 보내는 등 뒷정리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스케치해봅시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둘씩 짝을 지어 전도여행을 보내셨습니다(막6:7-13). 이 때 그냥 보내시지 않고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며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흥에 겨워 사역을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피곤하고 지친 몸이라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따로 한 적한 곳에서 쉬게 하셨지요(31). 하지만 사람들은 쉴틈을 주지 않고 먼저 와서 기다렸습니다(33).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저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빵을 주시고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자기들의 임금을 삼고자 했습니다(요6:15).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굶지는 않겠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죠.
예수님은 자기들의 생업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 가셔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을 둘 씩 짝지어 보내실 때도 ‘권능’을 주시며 보내셨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피곤함을 이해하시고 한 적한 곳에 가서 쉬도록 배려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군중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고 살면 먹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고 임금 삼으려는 저들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일에 솔선하여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뒤에 처지거나 미적거리지 않았습니다. 옳은 일에는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니다 하셨습니다(마5:37).
이번에 우리를 위하여 일해 주실 분들은 우리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45).
국민을 끌려고 하지 말고 자율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뒤처리를 하는 지도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식당에 가서나 잔치 집에 가서 실컷 먹고 일어서면 됩니다. 뒤처리는 다른 사람의 몫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잔치가 끝났을 때 예수님은 뒤처리하고 제자들은 쉬러갔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지도자 선택기준입니다.
2. 연구하는 사람(46,47)
올림픽에서 금 매달을 획득한 김0아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목표가 이뤄졌는데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내가 하고픈 일을 다 했습니다”라고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셨지요? 누구든, 무엇이든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입니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개발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조용하면 기도하러가셨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기도 중에 사역을 구상하고, 하나님께 보고하고, 지시받았을 것입니다. 기도 중에 새로운 사역에 소망을 두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하면 연구실(기도실)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자세입니다. 조용하면 여비서와 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공개적으로는 인권을 운운하는 파렴치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문제겠지요?
사실 기도해야할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고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설교를 하고 있는 저 자신이 기도해야 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해야 할 분이 아니고 기도를 들으시고 중보하실 분입니다(딤전2:5). 그럼에도 예수님은 틈만 있으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이신 겸손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솔선수범하신 분입니다.
이런 지도자가 선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이 볼 때 충분하지만 그래도 더 배우려는 자세, 더 연구하려는 자세,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시는 겸손한 일꾼이 선출되기를 기대합니다.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제자들은 쉬러가지만 예수님은 뒤처리를 하시고 홀로 앉아 연구(기도)하셨습니다. 남들이 쉬고 여가를 즐겼지만 예수님은 거기에는 별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홀로 앉아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지도자는 자질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기도(연구)하는 사람이어 합니다. 지도자의 시선은 피지배층에 있어야 합니다(47,48a). 위험을 감수하며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48b,49a). 연구하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소망합니다.
3. 겸손한 사람(48-52)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80대의 한 퇴직교수님께서 70대 할머니와 대화 중에 “참으로 섹시하십니다.”라고 했더랍니다.
이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교수님도 참 부끄럽습니다.”하며 당황해 하자 “미국에서는 마음이 참되고, 정서적으로 고상하고, 육체적으로 곱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붙여주는 극찬으로 ‘섹시하다’고 합니다.”라고 설명해 주시더랍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몰라주면 섭섭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알아주거나 더 높여주면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전도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쉴 틈을 주시고 당신은 잔치자리를 정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마쳤을 때 혼자 조용히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엄마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듯이 갈릴리 호수를 노저어가는 제자들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풍랑만난 제자들의 위태함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큰 변을 당하기전에 빨리 가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살폈지만 때는 밤 사경(새벽3~6)인지라 배를 태워 줄 사공도 없었습니다. 설령 사공이 있다고 할지라도 험한 풍랑을 헤치고 나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일념으로 급한 마음에 물위를 저벅저벅 걸어서 제자들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본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야호 우리 선생님 오신다!’하며 기뻐했나요? 아니면 ‘할렐루야! 예수님 오셨으니 우리는 살았다!’며 환호했나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열광했나요? 다음을 보십시오.
(막 6: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예수님은 위기에 처한 제자들을 도우려고 급한 마음에 물위라도 걸어서 찾아 왔는데 제자들은 선생이나 구세주로 봐주지 않고 겨우 유령(귀신)으로 봐줬습니다. 완전히 평가 절하한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엄청난 모욕이요 수치일 것입니다. 화가 나고 소리치고 싶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봅시다.
(막 6:50)...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신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들에게서조차 스승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탓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일깨우시고 위로하셨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예수님이십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런 사람이 지도자로 선출되기를 바랍니다. 무지한 제자들을 일깨우시는 예수님처럼 자기의 능력이나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수준으로 내려와 일깨우고 도와주는 지도자가 선출되기 원합니다. 자기가 가진 많은 장점과 좋은 것들을 국민을 위로하고 돕는데 사용하는 사람이 선출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자들은 왜 자기 선생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으로 알았을까요? 당시 상황을 보면 밤 사경이라 했으니 아마도 어두워서 식별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거나 신적능력을 가진 분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마26:25 ; 막9:5). 제자들의 그러한 상태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